하루 종일 정신없이 일했는데, 밤에 누워서 돌아보면 "오늘 대체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드는 날이 있다. 이메일 답장하고 회의 참석하고 메신저 확인하느라 분명 쉴 틈 없이 움직였는데, 정작 의미 있는 결과물은 남지 않은 그런 날. 칼 뉴포트의 딥워크를 다룬 영상을 보면서 그 허무함의 정체가 뭔지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가짜 바쁨이라는 함정
영상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끈 건 한 회사가 이메일 처리에만 연간 13억 원 이상을 쓴다는 사례였다.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신적 에너지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낭비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수치다.
뉴포트는 이런 현상을 '바쁨 숭배'라고 불렀다. 회의에 많이 참석하면 생산적인 사람, 메시지에 즉각 반응하면 헌신적인 사람이라는 착각. 우리는 눈에 보이는 활동량을 성과와 동일시하는 문화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나도 한때 하루에 회의를 다섯 개씩 소화하면서 뿌듯해한 적이 있다. 바쁘다는 느낌 자체가 일종의 안도감을 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회의들 중 절반은 없어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진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뭔지 판단하기 어려우니까, 바쁜 모습을 보여주는 쪽으로 도피했던 셈이다.
영상에서 소개한 '주의력 잔여물' 개념도 인상 깊었다. A 업무에서 B 업무로 넘어갈 때 뇌가 바로 전환되지 않고 일부는 여전히 A를 생각하고 있다는 것인데, 멀티태스킹이 왜 비효율적인지를 과학적으로 설명해 주는 대목이었다.
딥워크와 샬로워크, 무엇이 다른가
영상의 핵심 프레임워크는 모든 업무를 딥워크와 샬로워크 두 가지로 나누는 것이었다. 딥워크는 방해 없이 완전히 몰입해서 인지적 한계까지 밀어붙이는 고집중 작업이다. 새로운 코드를 짜거나 전략 보고서를 쓰는 것처럼 대체 불가능한 가치를 만들어내는 일이 여기 해당한다.
반면 샬로워크는 이메일 답장, 회의 참석, 간단한 서류 처리처럼 머리를 크게 쓸 필요 없는 작업들이다. 바쁘게 만들어 주지만 성과는 낮다. 문제는 현대 직장 환경이 이 샬로워크를 진짜 업무로 착각하게 만든다는 점이다.
몰입이 중요하다는 건 머리로는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하루 중 딥워크에 투자하는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세어 보면 충격적으로 적다. 나도 한번 일주일간 업무 시간을 기록해 본 적이 있는데, 진짜 집중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낸 시간은 하루 평균 한 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전부 샬로워크에 해당하는 일들이었다. 그때 깨달았다. 바쁜 것과 생산적인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걸.
뉴포트가 강조하듯 딥워크는 배우기 어렵고 대체 불가능한 성과를 만들어내는 반면, 샬로워크는 누구나 할 수 있고 자동화로 대체될 가능성도 높다. 어떤 종류의 일에 시간을 쏟느냐가 결국 장기적인 경쟁력을 결정짓는다는 점에서, 이 구분은 단순한 분류가 아니라 일하는 방식의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하는 것이라 느꼈다.
몰입은 의지가 아니라 설계의 문제다
영상에서 소개한 뉴포트의 네 가지 전략 중 가장 와닿은 건 '고정 시간 생산성'이었다. 보통은 일이 끝날 때까지 일하는데, 이걸 뒤집어서 퇴근 시간을 먼저 정하고 그 안에 끝내기 위해 역산하라는 것이다. 시간이 한정되면 중요하지 않은 일은 자연스럽게 쳐낼 수밖에 없다.
'루스벨트 대시'라는 전략도 흥미로웠다. 원래 두세 시간 걸릴 일에 90분이라는 빡빡한 제한을 걸고, 그 시간 동안 스마트폰도 치우고 알림도 끄고 미친 듯이 몰입하는 방식이다. 일종의 고강도 인터벌 훈련을 집중력에 적용한 셈인데, 생각보다 실천 가능한 방법이라고 느꼈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건 벨 연구소의 허브앤스포크 모델이다. 협업을 위한 시끌벅적한 공간과 개인 집중을 위한 조용한 공간을 완전히 분리해 둔 구조인데, 딥워크가 반드시 혼자 동굴에 틀어박히는 걸 의미하지 않는다는 점을 잘 보여준다. 아이디어는 함께 나누되 실행은 깊이 파고드는 방식. 이 균형이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집중은 의지력으로 버티는 게 아니라 환경을 설계해서 강제로 만들어야 한다는 게 뉴포트의 핵심 주장이다. 나도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의지만으로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알림을 무시하는 건 한계가 있다. 아예 물리적으로 차단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몰입이 가능해진다.

모든 사람에게 통하는 전략일까
영상 후반부에서 딥워크에 대한 비판도 다뤘는데, 이 부분이 균형 잡힌 시각을 갖는 데 도움이 되었다. 가장 날카로운 지적은 딥워크 전략이 시간과 자원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소수에게만 유효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다. 상사가 슬랙으로 부르는데 "지금 딥워크 중이라 답장 못 합니다"라고 할 수 있는 직장인이 얼마나 될까. 회의를 빠질 자유가 있는 사람도 드물고, 자영업자나 크리에이터에게는 소셜 미디어 관리 같은 샬로워크 자체가 생계와 직결되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딥워크를 올인해야 할 원칙이 아니라 방향성으로 받아들이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하루에 두세 시간의 완벽한 딥워크 블록을 확보하지 못하더라도, 30분이라도 알림을 끄고 한 가지 일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완벽한 환경이 아니더라도 조금씩 샬로워크의 비중을 줄여가는 노력 자체가 의미 있다고 본다.
사람마다 처한 상황과 맥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몰입 시간을 조금이라도 확보하려는 시도는 누구에게나 유효하다. 핵심은 뉴포트의 전략을 그대로 복사하는 게 아니라 자기 환경에 맞게 변형해서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마무리
이 영상을 보고 나서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 하나 있다. "지금 내가 매일 반복하는 자잘한 업무들 때문에 놓치고 있는 가장 중요한 딥워크 한 가지는 뭘까?" 아직 명확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이 질문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하루를 보내는 방식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몰입은 재능이 아니라 기술이고, 기술은 훈련하면 나아진다는 뉴포트의 말을 믿어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