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유튜브에서 메타인지를 연구하는 교수의 강연을 접했다. '용기'와 '메타인지'라는 두 단어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궁금해서 끝까지 들었는데, 듣고 나니 소크라테스가 말한 "너 자신을 알라"는 문장이 왜 수천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자되는지 조금은 체감할 수 있었다. 오늘은 그 강연 내용을 바탕으로 내가 느낀 점과 함께 메타인지와 용기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한다.

완성의 착각 – 왜 우리는 거절 앞에서 무너지는가
강연자는 대학교 1학년 시절 겪은 브레인스토밍 경험을 꺼내놓았다.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라 신나게 설명했는데, 끝나자마자 누군가가 "그건 아닌 것 같아"라고 단칼에 잘라버린 순간이었다. 그 뒤로 입을 닫았고, 다시는 먼저 말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떠올랐다. 회의 중에 의견을 냈다가 묵살당한 뒤 한동안 발언 자체를 꺼리게 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나를 짓누른 감정은 단순한 창피함이 아니라, 나라는 사람 자체가 부정당한 것 같은 무력감이었다. 강연자는 이 현상의 원인을 완성의 착각이라고 설명했다.
내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완성되어 있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거절당하는 순간 아이디어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부정당한 기분이 든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 부분이 강연 전체에서 가장 와닿았다. 돌이켜 보면 우리가 거절을 두려워하는 건 아이디어가 별로여서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에 나라는 사람 전체를 실어버리기 때문이 아닐까.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는 말도 결국 이 지점을 짚고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아는 것, 거절이 나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는 걸 인식하는 것, 바로 그것이 모든 용기의 출발점이라는 의미로 다가왔다. 완성의 착각은 결국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고, 이를 깨뜨리는 첫걸음이 곧 메타인지라는 점을 이 대목에서 강하게 느꼈다.
메타인지의 세 가지 정의 – 거울, 믿음, 그리고 인정
강연에서 메타인지를 세 문장으로 정리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첫째, 메타인지는 자기 자신의 거울이다. 둘째, 그 거울을 보면서 자신을 믿는 능력이다. 셋째, 거울 속 완벽하지 않은 모습을 인정하는 것이다. 특히 세 번째 정의가 핵심이라고 느꼈다.
보통 자기 인식이라 하면 장점을 파악하고 강화하는 쪽을 떠올리기 쉬운데, 메타인지의 진짜 힘은 부족한 부분을 외면하지 않는 데서 나온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나 역시 학창 시절에 시험 성적만으로 스스로를 평가하던 습관이 있었다. 점수가 잘 나오면 나는 괜찮은 사람, 못 나오면 나는 부족한 사람이라는 이분법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메타인지적 관점에서 보면 이건 거울의 한쪽 면만 본 셈이다. 내가 무엇을 모르는지, 어디서 불안해하는지를 직시해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학습과 성장이 시작된다.
소크라테스가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진정한 앎이라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다. 결국 메타인지란 거창한 학술 개념이 아니라 나의 한계를 솔직하게 인정하는 용기 그 자체인 셈이다.
이 정의를 접하고 나서부터 나도 무언가를 배울 때 내가 어디까지 알고 어디서부터 모르는지를 먼저 파악하려는 습관을 들이고 있는데, 이것만으로도 학습 효율이 확연히 달라졌다고 느끼고 있다. 아는 척하는 것보다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이 오히려 배움의 문을 열어준다는 사실을 메타인지의 정의를 통해 다시금 확인한 셈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가 더 걱정인 이유 – 완벽함이라는 함정
강연자가 자녀 이야기를 꺼냈을 때 살짝 의외였다. 공부를 잘하는 첫째가 오히려 더 걱정된다고 했기 때문이다. 첫째는 늘 완벽한 모습만 보여왔기에 실패나 거절의 순간을 겪어본 경험이 적고, 반대로 둘째는 싫은 건 싫다고 표현하고 어려우면 어렵다고 솔직하게 드러내는 아이라 나중에 어려운 순간이 왔을 때 자기 자신을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논리였다.
이 대목에서 꽤 오래 생각에 잠겼다. 한국 사회에서는 성적이 좋고 모범적인 아이가 곧 안심되는 아이라는 공식이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니까. 하지만 강연자의 말을 곱씹어 보면, 완벽함 뒤에 숨어버린 아이는 인생의 수많은 폭풍 앞에서 대처할 근육이 없는 셈이다. 브레인스토밍이라는 단어 자체가 뇌 속의 폭풍이라는 뜻인데, 답이 이미 정해져 있으면 폭풍이 일어날 리가 없다.
부모나 교사가 답을 곧바로 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답을 받는 순간 아이의 머릿속 폭풍은 잠잠해지고, 그 폭풍 속에서 방향을 찾는 연습을 할 기회 자체가 사라진다. 나도 부모는 아니지만, 교육에서 정답을 곧바로 주기보다 혼란과 시행착오를 경험하게 해야 한다는 메시지에는 크게 공감했다.
이것은 비단 아이들 교육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직장에서 후배를 가르치거나 팀원과 협업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답을 쉽게 주는 대신 스스로 고민하게 만드는 여유가 결국 진짜 성장을 이끄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마무리
이 강연에서 가장 오래 남은 문장은 "메타인지도 용기도 완성이 없다"는 말이었다. 한 번 용기를 냈다고 앞으로 모든 순간에 용기를 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메타인지를 안다고 해서 더 이상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저 매 순간 완벽하지 않은 나를 인정하면서, 조금이라도 불편한 쪽을 선택하는 연습을 반복하는 것이 전부라는 이야기였다.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도 한 번의 깨달음이 아니라 평생에 걸친 과정이듯, 메타인지 역시 끝없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행위인 셈이다.
강연자가 본인도 한국에서 학부모 모임에 나가면 완벽하지 않은 한국어가 들킬까 봐 두렵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부분도 기억에 남는다. 메타인지를 연구하는 사람조차 매 순간 착각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위안이 되었다. 결국 중요한 건 착각에 빠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빠졌을 때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 강연을 듣기 전에는 용기란 타고나는 성격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지금은 조금 다르게 본다. 용기란 내가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사람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한 발짝 내딛는 선택이다.
그리고 메타인지는 그 선택을 가능하게 해주는 내면의 근거가 된다. 나 역시 앞으로 거절이나 실패의 순간이 오면, 완성의 착각에 빠지지 않았는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려 한다. 그 질문 하나가 용기의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출처
https://www.youtube.com/watch?v=9vjJC7TwA3Y